문순득의 흥미로운 이야기: 《표해시말》 속의 지혜로운 표류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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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순득은 조선 후기에 매우 이례적인 인물로, 단순한 표류자를 넘어 최초로 여러 이국 언어를 능숙하게 통역할 수 있었던 민간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.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기를 넘어,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.
1. 🌊 홍어 장수의 파란만장한 표류 (1801년)
문순득은 1801년, 동료들과 함께 홍어를 구하기 위해 태사도(현재의 전남 신안군)로 항해하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. 닷새 밤낮을 표류한 끝에 도착한 곳은 바로 **류큐 왕국(유구국)**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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류큐에서의 능력 발휘: 류큐국에 표착한 후, 그는 구휼(救恤)을 받으며 생활했는데, 놀랍게도 불과 6개월 만에 류큐어를 능숙하게 습득했습니다. 이 놀라운 언어 능력 덕분에 그는 다른 표류민들과 달리 현지인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, 이는 이후의 여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.
2. 🇵🇭 여송(필리핀)까지의 '재표류'와 통역 활동
류큐국에서 청나라 배를 타고 귀국을 시도하던 중, 또다시 태풍을 만나 **스페인령 필리핀(당시 조선에서는 여송(呂宋)이라고 불림)**의 루손섬(현재의 마닐라 근교)에 표착하게 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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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간 외교관 역할: 문순득은 필리핀에서도 약 1년 4개월을 머물렀는데, 이곳에서도 **여송어(스페인어와 현지 언어)**를 빠르게 익혔습니다. 스페인 관리들은 그가 통역을 잘하는 것을 보고 다른 청나라 표류민들을 심문하거나, 물건을 거래할 때 그를 통역관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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류큐어 통역의 활용: 특히, 그가 류큐국에서 배운 류큐어를 바탕으로 청나라 상인들과 필리핀 관리들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. 이는 조선인이 외국의 행정/상업 분야에서 공식적인 통역 역할을 수행한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.
3. 🗺️ 마카오와 광둥을 거쳐 귀향 (1805년)
필리핀에서 다시 청나라 상선을 타고 귀국길에 올랐고, 마카오와 **광둥(광저우)**을 거쳐 약 3년 2개월 만에 고향인 우이도로 돌아왔습니다. 이 여정은 당시 조선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 일주에 가까운 경험이었습니다.
4. 📚 정약전의 기록, 《표해시말》
흑산도에서 유배 중이던 대학자 정약전은 문순득이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를 듣고, 직접 그를 만나 그의 놀라운 표류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. 이 기록이 바로 **《표해시말(漂海始末)》**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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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관의 확장: 정약전은 이 책에 문순득이 전한 류큐, 필리핀, 마카오, 청나라의 풍속, 언어, 생활 모습을 담았습니다. 이는 당시 쇄국 정책 속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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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순득의 지혜: 정약전은 문순득의 비상한 언어 습득 능력과 낯선 타국에서의 적응력을 높이 평가했으며, 문순득을 통해 서양 문물(필리핀을 통치하던 스페인 문물)의 간접적인 정보를 얻기도 했습니다.
5. 💡 통역 능력이 남긴 유산
문순득의 이야기는 그저 표류기가 아닌, **"언어 능력이 한 개인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"**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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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의 언어 능력 덕분에 그는 단순한 난민이 아닌, 협상과 교역에 필요한 인재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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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가 정약전에게 전해준 이국 언어의 발음과 풍속 기록은 당시 조선 학자들이 동남아시아와 서양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했습니다.
문순득은 조선의 뱃사람이었지만, 그의 표류와 언어 능력은 그를 최초의 민간 통역관이자 조선의 '세계관 확장자' 중 한 명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.